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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령 교수 칼럽) 울산, 원자력발전의 종착역이 되다

울산, 원자력발전의 종착역이 되다

김희령-교수

울산, 원자력발전의 종착역이 되다

[UNIST Magazine] 궁금한 이야기 U, 김희령 교수 칼럼

우리나라는 1978년 국내 최초로 고리에서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의 운전을 시작했다. 이후 38년 동안 4곳에 원전을 짓고, 24기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에서 고리 1호기에 대한 영구 정지를 권고키로 결정했다. 37년간 사용한 원전의 수명이 다했다고 본 것이다. 이제 원전을 건설하는 일뿐 아니라 해체까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다 쓴 원전을 안전하게 해체하는 연구는 UNIST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수명을 다한 원전을 해체하는 폐로 작업은 여러 단계로 진행된다. 폐로 작업은 원전을 영구적으로 정지시킨 후 시설이나 원전 부지의 방사성 오염을 제거하고 설비들을 절단 해체해 법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일련의 활동으로 정의된다. 이 작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계는 ‘제염해체’다. 이는 원전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로를 포함한 다양한 시설, 설비, 계통들을 하나씩 분해하고 방사성 오염들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원전을 해체하는 동안 발생하는 폐기물은 제염 과정을 거쳐 재활용을 하거나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으로 가져가 영구 처분한다. 궁극적으로 오염된 부지는 원전이 지어지기 이전의 상태로 깨끗하게 복원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제염해체는 원전을 철거해 녹지로 만드는 것이다.

원전해체기술의 네 가지 열쇠

원전을 해체하려면 현재 사용하는 기술을 넘어서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예컨대, 고방사성환경에서 로봇을 투입해 시설 등을 분해하는 ‘원격 절단’이 필요하다. 이밖에도 방사성 핵종의 안정화, 방사성 폐기물의 부피를 줄이는 기술, 부지 현장의 저준위 방사선 측정, 원전 주변 수중 방사선 감시 같은 기술이 요구된다. 이런 원전해체기술은 제염, 해체 절단, 방사성폐기물 처리, 환경 복원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제염 기술을 살펴보자. 제염의 첫 번째는 방사성 오염을 없애기 위해 물체의 표면에 묻어 있는 방사성 핵종을 벗겨내는 일이다. 사포로 문지르거나 유기 용매를 사용해 벗겨내기도 한다. 세제로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 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제염 활동은 이러한 물리적(기계적) 제염, 화학적 제염을 비롯해 전기화학적 제염, 플라스마 제염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이뤄진다.

해체 절단은 말 그대로 원전을 분해하고 잘라내는 것이다. 원전에서 사용된 크고 다양한 설비나 구조물들은 절단 작업을 거쳐 부피를 줄인다. 각종 설비들은 절단 성능이 좋은 톱이나 그라인더를 사용해 자르면 된다. 고압의 물을 사용해서 콘크리트 같은 폐기물을 자르거나 레이저로 2차 폐기물을 발생시키지 않고 물체를 깨끗이 잘라낼 수도 있다.

원자로 격납 건물에 폭약을 설치하고 필요한 부분을 폭발시켜 해체하기도 한다. 또 방사선 준위가 높은 곳에는 사람이 직접 들어갈 수 없으므로 로봇이나 기계 팔(Manipulator) 등을 사용해 원격으로 자르게 된다. 절단 해체는 어느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자르고자 하는 곳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방사성폐기물은 방사선이라는 특수성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해가 없도록 안전하게 처리돼야 한다. 따라서 원전을 해체하는 동안 방사성 핵종이 주변 환경으로 멀리 나가지 못하도록 고정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방사성폐기물 처리 비용을 줄이기 위한 부피감용과 재활용 기술도 필요하다. 방사성 폐기물 200L 드럼 하나당 처분 비용은 약 1100만 원에 이른다. 이를 아끼려면 부피를 줄이는 기술이 중요하다. 또 방사성폐기물 중에는 제염을 통해 방사선 준위를 현저히 낮추면 재활용이 가능한 것이 있다. 원전해체 시 발생되는 방대한 콘크리트나 금속 폐기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방사성 오염을 없애기만 하면 막대한 자원으로 다시 사용할 수 있고, 방사성폐기물 처리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원전해체 후에도 원자로가 세워졌던 땅은 방사성 핵종으로 오염돼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오염을 제거해 토양을 원전이 지어지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 토양 제염 같은 활동을 통해 환경을 복원하는 것이다.

인간을 방사선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도 있다. 우선 땅 속의 방사능을 현장에서 직접 측정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로는 원전이 사라진 부지 내에 방사선적으로 불안한 곳은 없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 수중 방사선 현장 감시도 원전 인근 바다가 안전한지 지속적으로 방사선 상황을 살피는 데 쓰인다.

원전해체기술 개발의 최적지, 울산!

제염, 절단해체, 방사성폐기물 처리, 환경 복원 등 원전해체를 위한 기술은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원자력 방사선, 기계, 화학, 물리, 환경, 전기전자, 토목, IT 등을 종합적으로 연계해 개발하고 산업적으로 실증, 적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원전해체기술을 개발하고 해체 현장에서 직접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연구센터, 산학연 인프라, 입지조건이 마련돼야 한다.

원전해체기술을 연구하기 위한 최적지는 산업 수도이자 세계 최대의 원전 도시인 울산광역시다. 울산시는 24기의 원자로 중 절반인 12개를 지척에 두고 있다. 국도 및 고속도로 등 주변 대도시와 외부로의 접근성도 우수해 유관기관의 연구개발 인력 파견이 유리하다. 고리 및 신고리 발전소 인접 바다로의 운송 환경도 뛰어나다.

또한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에너지융합산업단지에는 원전해체기술을 종합적으로 개발 실증할 부지가 마련돼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 국제학교, 주거, 상업, 문화, 복지 시설 등 연구 개발 인력 및 연구원 가족, 산업단지 종사자를 포함한 인근 주민에 대한 편의 시설 등 연구 및 생활공간으로써 여건도 갖추고 있다.

원전해체기술개발을 위한 관산학연 융합 환경도 이미 확보돼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원전해체에 대한 산업 기술적 역량을 가진 산업체, 산학연 기술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울산테크노파크, 해체기술개발 종합연구센터 유치를 추진 중인 울산시 및 울주군 지자체, 원전안전해체기술 개발 역량을 갖춘 UNIST가 있기 때문이다.

UNIST 원전해체융합기술연구센터에는 원자력, 기계, 도시환경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있다. 이들은 원전해체기술 인력을 양성할 토대를 마련하고, 방사성폐기물 제염 기술과 고방사능 구역의 운격 절단 기술의 기반을 닦고 있다. 또 해체 부지와 수중의 환경방사능 현장을 감시할 기술도 준비 중이다. 지역 대학, 연구기관, 산업체와 함께 울산의 원전해체기술 개발 인프라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UNIST의 원전해체융합기술 기반을 바탕으로 장차 안전한 원전해체기술의 요람이 될 울산을 꿈꿔본다.

글_ 김희령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

김희령 교수는 UNIST 원전해체융합기술연구센터장으로서 베타방사선측정기, 자기유체역학 펌프에서의 액체금속, 액체금속 표적, 방사능 분석, 소듐냉각 고속로냉각수, 방사선 제염/해체 등을 연구하며 원전 해체의 중요성과 기술 개발에 대해 힘쓰고 있다.